2003-03-13
에필로그
성기수 님이 남겨주셨습니다.
 

67년 구(舊)한국과학기술연구소 초대 전산실장 취임 이후 92년 2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부설 시스템공학연구소(SERI) 소장을 그만두기까지 그는 25년 간을 최고책임자로서 오로지 한곳에서만 보냈다. 이런 재임기록은 우리나라 역대 이공계열 기관장 가운데서는 최고에 해당한다. 앞으로도 이 기록은 깨지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60년대 컴퓨터 도입 기에서 80년대 도약기에 이르는 동안 우리나라 정보산업 역사의 중심에는 항상 성기수와 그가 이끄는 SERI가 있었다. 25년의 재임 햇수들이 하나씩 더해 이 같은 구심력을 이끌어낸 것이었다. 성기수가 평균 재임연수가 2~3년에 불과한 이공계 출연연구소에서 이처럼 장수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SERI 행정원 출신 강학수(姜鶴秀·연구개발정보센터 기획운영실장)는 탁월한 연구소 경영감각을 꼽고 있다.

 "그는 연구소경영 관리기법을 생이지지(生而知之)인 듯 책임자에 오르게 된 처음부터 마치 수년의 경험을 가진 전문경영인처럼 행사했다.

연구소 최고책임직을 맡으면서부터 약한 듯하면서도 선이 굵고 투박한 듯하면서도 섬세한 그의 경영감각……. 이를 한 마디로 표현하기란 어렵다. 이것이 곧 그의 경영비법이다. 그러나 그 자신은 이것이 비법임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모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할는지도 모른다. 그가 내리는 결정은 곧 법칙이요 기준이다. 새우가 내리는 고래의 결정이다. 한 치의 방향착오나 더 손볼 여지가 없다. 그가 내린 결론은 수년이 지난 후에 되돌아봐도 오차가 없다."

 성박사의 이같은 경영감각은 그가 재임한 25년 동안 SERI를 우리나라 출연연구소 가운데 자립도가 가장 높은 연구소로 발전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기업의 최고경영자나 기관의 장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는 결과적으로는 경영실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을 터이다. 91년 안문석(安文錫·고려대 행정학과 교수)이 분석한「시스템공학연구소 24년 비용효과 분석」이라는 SERI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성기수가 KIST 전산실(SERI의 전신)을 창설한 67년부터 90년 말까지 24년 동안 SERI는 비용(Cost)대비 효과(Benefit)에서 무려 34배의 가치를 창출해낸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런 성과는 정책결정 과정에서 상급기관인 KIST나 과기처와 누차에 걸쳐 마찰을 빚으면서도 성기수가 SERI 소장 직에 연임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그가 자신이 재직하는 25년 동안 SERI를 최고의 연구소로 키워갈 수 있었던 비결로는 조직관리 측면에서 철저하게 정글법칙을 적용했다는 점이다. 70~80년대 SERI 연구원들은 하나같이 자신이「대한민국에서 최고가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실제로도 정부는 연구원들에 대해 그만한 대우를 해주고 있었으며 이들의 연구개발 성과는 곧바로 우리나라 정보산업의 역사가 되던 시절이었다. 성기수도 관리자로서 이런 점을 가장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한 연구원이 칭찬을 받게 되면 다른 연구원은 쓴잔을 마셔야 하는 사례들이 얼마든지 가능했다. 진행중인 프로젝트에서 낭패스러운 일이 생겨도 그가 화내거나 야단치는 일은 본적이 없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SERI 소장은 아무나 앉는 자리가 아니라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성기수박사는 SERI 소장으로서 자유방임형 관리자였다. 그러나 이 자유방임은 철저한 위임과 책임의 조화를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성기수는 연구원들이 올리는 결재서류에 대해 부정적인 결정을 거의 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어떤 품의에 대해서도 일단은 긍정적인 시각을 가졌다. 일부 연구원들이 이를 역이용한 사례가 더러 있었지만 결국은 연구실적으로 그 결과가 나타나게 마련이었다. 품의 결과는 곧 해당 연구원 실적으로 남게 되는 것이었다. 성기수는 결과가 나타날 때까지 알면서도 모른 채 해두는 스타일이었다.

 SERI 출신 연구원들은 똑같은 내용에 대해 서로 다른 품의가 올라오더라도 그는 그 두개 모두를 결재해 줬을 것이라고 회고하고 있다. 연구원들은 강한 자는 살게 하고 약한 자는 스스로 도태되도록 하고 마는 성기수의 독특한 스타일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연구원들은 이런 성기수의 스타일을 놓고 조선 초 18년 간 정승을 지낸 황희(黃喜)식 결재방법으로 표현하고 있다.

 황희 집에 어느 날 남자하인과 여자하인이 서로 자신이 옳다고 다투고 있었는데 마침내는 시시비비를 가리려 황희를 찾았다. 남자하인이 먼저 "제가 옳지요."하니 황희는 "네 말이 옳구나"라고 답했다. 그러자 여자하인이 나서 "아닙니다. 제가 옳습니다."라고 하자, 황희는 다시 "그래 네 말도 옳구나." 하더라는 것이다. 이를 지켜보던 부인이 "이것이면 이것이고 저것이면 저것이지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다는 그런 엉터리 판결이 어디 있습니까?"라며 불평하였다. 그러자 황희는 부인을 향해 "그대 말도 옳도다" 하였다는 것이다.

 그의 황희 정승 식 조직관리는 SERI 연구원들에게 매우 인기가 있었다. 성기수가 재직하는 25년 동안 SERI에서는 80년 국보위 투서사건, 88년 올림픽전산화 후유증 등 신․고참 연구원들 사이에 몇 번의 조직 내 갈등이 있었지만 단 한번도 그것이 "소장 물러나라"로 확대된 적이 없었다는 것이 이를 입증해주고 있다. 그가 SERI를 우리나라 정보산업 발전사의 중심에 서게 할 수 있었던 힘으로는 25년 동안 줄곧 과학자로서 논리적 사고와 투명성을 견지해 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SERI 연구원 출신 이명재(李明宰·부산대 경제학과 교수)는 과학자로서 철학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그의 사고방식은 일견 매우 단순하게 보이며 또한 후진들을 자상하게 가르치는 타입도 아니다. 종이와 석탄의 차이를 산 나무와 죽은 나무의 차이로 단순화시킬 수 있는가 하면 주위사람들의 의견에 대해 '응, 그렇지' 또는 '으응, 아니지'로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그였다. 사물을 복잡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면 미래를 확신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성박사가 소장으로 있는 동안 SERI 연구원으로 재직하다 현재 우리나라 정부기관·산업·연구소·대학 등에서 주요 보직을 맡고 있는 인물들은 약 7백여 명.
주요 인사들로는 경상현·고건·구지회·권순덕·권영범·김길수·김길조·김길창·김동규·김봉일·김우영·김의홍·김진형·남석우·민병민·박동인·박병소·박성주·박승규·배일성·백인섭·변옥환·성승희·신동필·안문석·안영경·안태백·양영규·오길록·우치수·원유헌·유락균·유완영·윤재철·이경상·이광세·이기식·이단형·이만재·이명재·이무신·이옥화·이용태·이윤기·이은숙·이인동·이정희·이화순·전주식·정규동·정진욱·조영화·주혜경·천유식·최덕규·최정호·허문열·황규복 등이 있다. 이밖에도 70년대부터 주력한 교육사업 부문에서도 SERI는 4만 3천여 명의 고급 정보기술 인력을 배출해 냈다.
92년 1월 9일 그는 25년 동안 모든 것을 바쳤던 SERI에서 이임사 한 마디 못한 채 소장직에서 물러났다. 1주일 뒤 과기처는 그가 “일신상의 이유로 사의를 표명했다.”고 발표했지만 사실 그의 사임은 그 즈음 93 대전엑스포 전산화 프로젝트 수행방법을을 놓고 과기처와 SERI 사이의 25년 동안 해묵은 감정싸움이 폭발한 것이 원인이 됐다. 과기처는 대기업 콘소시엄의 주장에 동조했고 성 박사는 SERI 책임 하에 20개 벤처 기업에게 일을 나누어주는 방식을 제안했던 것이다. 당시 대전EXPO조직위원장 오명 박사의 용단으로 SERI 방식이 채택되었고 그의 소신대로 엑스포는 성공적으로 치뤄졌다.  
SERI 강당에서 하게 된 소장 이취임 행사에서 과기처는 신동필(申東弼) 신임 SERI 소장의 취임사는 허락했지만 전임 성기수 소장의 이임사는 허락하지 않았다. 이로부터 1년 후인 93년 12월 11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는 전·현직 SERI 연구원 2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기수 박사 회갑기념사업준비위원회가 주최한「의구(義矩) 성기수 박사 회갑기념집」증정식이 열렸다. 이 행사는 1년 전에 듣지 못한 성기수의 이임사를 듣기 위해 후배들이 정성껏 마련한 자리였다.

 

그후 성박사는 한 지방 신설대학의 삼고초려 끝에 초대 총장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국내 대학으로는 서울대 포항공대보다 더 성능이 우수한 슈퍼컴퓨터를 도입하고 최고수준의 교수진 과 인터넷 infra와 디지털 도서관을 구축하는 등 이 무명의 대학을 단번에 국내 유수의 IT전문 인력교육 대학으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신임 교수를 뽑는 과정에서 은근히 변칙을 강요하는 재단 측과 맞서다 그가 스카웃해 온 교수들을 무능하다는 핑계로 재임용에서 무려 4명이나 탈락시키자 홀연히 사표를 내던진 이야기는 이 지방 대학가에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는 그의 올곧은 성품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미국 MIT공대처럼 세계 유수의 대학을 만들려는 그의 꿈은 미완으로 끝났지만 97년엔 교육개혁 추진 우수대학으로, 2000년 한 중앙 일간지의 전국 대학평가에서 교육여건이나 시설과 취업률에서 1위를 차지하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나타내는 것을 보면 그가 닦은 기초가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알 수 있다.  

언젠가 성 박사에게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다시 여쭈었더니 “내가 누군데…… 성삼문 자손 아니냐?”며 한 마디로 대답하셨다. 이 함축적인 말속엔 지난 80년 독재정권 시절 금강산댐 문제로 온 난리를 피우며 어용과학자들이 입에 거품을 품고 홍위병 노릇을 할 때 그 혼자 외로이 ‘아니요.’라고 맞설 수 있었던 사실에서도 그의 평생 좌우명인 정직, 성실을 실천하는 삶을 엿볼 수 있다.

최근엔 용인 수지로 집을 옮겨 조용히 지내신다. 가끔 같은 과학자의 길을 걷고 있는 2남1여 의 자녀들과 손자들을 만나는 즐거움으로 미국을 오가며 여유로운 시간도 보내며 틈틈이 수영과 등산, 인터넷 바둑 으로 건강을 지키기도 한다.
반가운 소식은 이제 기독교에 귀의, 신앙생활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아니 성박사님, 그전엔 신앙생활을 열심히(?) 거부하시더니요.” 하고 짓궂게 물었더니 “응, 이제 나이 먹으면 집사람 눈치와 하나님의 눈치를 좀 보게 되어있지” 하며 껄껄 웃으신다.
이제 그가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조선일보와 공동운영하고 있는, 정책대안 토론 사이트: 화이낫( http://www.whynot.or.kr)이 더 많은 이들에게 관심과 호응을 얻어, 지금과 같은 우리나라의 3류 정치풍토가 축구 4강 마냥 세계를 놀라게 하는 디지털 정당들의 개임으로 업그레이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한다. 그러한 날을 앞당기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성 박사가 평소에 주장하는 이상국가 실현을 위한 녹색세금당 발기를 위한 격문을 아래에 실었다.

시간에 쫓겨 편집이 엉성하였던 초판본을 그동안 <전자신문>에 실린 성박사님의 논단과 인터뷰 기사들을 첨가하여 다시 수정재판을 내게 되었다.

<전자신문>의 서현진 부장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모쪼록 진리를 쫓는 구도자마냥 오직 외로이 바른 길만을 평생 고집한 채 걸어왔던 그분의 소중한 발자취가 더 많은 이들에게 감동적으로 와 닿기를 기대해본다.(만든이)

녹색세금당을 발기하면서
동참을 호소합니다.
지금 세상일이 심히 걱정스러운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구태의연한 정치풍토가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동안, 기업환경, 교육환경, 의료환경이 악화되고 있고, 지구온난화의 진행으로 생태계 전체가 위협받고 있으며, 국가안보의 기초마저 흔들리고 있습니다. 기대를 걸었던 대선 후보들 중 어느 누구도 산적한 현안 타개를 위한 뚜렷한 정책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고, 사사로운 약점 캐기에 더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대선 결과에 관계없이 차기 정권 하에서도 국력을 낭비하고 있는 여러 사회 현안들 중 어느 하나도 해결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앉아서 걱정만 하고, 낡고 역겨운 프로정치인들의 쇼를 구경만 하기에는, 사안이 너무 중대하고 시간이 너무나 촉박합니다. 뜻을 같이 하는 유권자들이 행동에 나설 때입니다.

정치개혁에 동참할 것을 호소합니다.
돈에 오염되고 지연, 학연에 얽힌 정치판이 시장경제를 왜곡하며, 사회 전체를 멍들게 하는 일은 이제 더 이상 용납될 수 없습니다. 현안 난제들의 개혁방향을 놓고 뜻을 같이 하는 유권자의 수가 백만, 천만을 넘어서고, 사이버 광장에 모여서 한 목소리를 낼 때, 낡은 정치풍토는 저절로 사라질 것입니다. 이것은 꿈이 아니고 현실로 가능합니다. 동참하는 동지들이 매달 2명의 새 동지를 유치할 때 그 수는 1년여에 천만 명을 넘게 됩니다. 그리하여 법치주의, 민주주의, 시장경제의 정치적 기틀이 마련된다면, 나라의 장래에 희망의 서광이 비치게 될 것입니다.

조세개혁에 동참할 것을 호소합니다.
세금이 불공평하고 복잡한 것은 가히 그 극에 달해있습니다. 지키기 어렵게 만들어놓고 선별적으로 세무사찰을 하는 권력의 구 태 또한 청산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금이 단순하고 공평하고 투명해서 누구나 쉽게 계산할 수 있고,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낡은 누더기 옷은 벗어버리고, 새 옷을 입을 때가 된 것입니다. 이자 세를 철폐하여 금융 대 국이 되어 부국 서열4위안에 들게 된 룩셈불르크의 경우를 참고해야 합니다. 법인세를 가장 낮게 유지함으로써 세계적 IT 산업단지 조성에 성공한 아일랜드의 경우에서 배워야 합니다. IT대국을 지향하고 있는 한국의 법인세는 0%가 바람직합니다. 조세개혁의 장기적 비전으로는 이자세 법인세를 포함한 모든 직접세를 줄여나가고, 간접세를 늘려나가되, 간접세의 근간을 부가가치세가 아니라 에너지소비세로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부가가치세를 포함해서 모든 잡다한 세금들은 단계적으로 줄여나가고, 종국에는 철폐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렇게 되면 전국이 면세지역이 된 효과를 갖게 되어, 관광대국, 쇼핑천국, 아세아 금융센터의 길이 열리고, 기업하기 좋은 곳으로 소문이 나서, 나라 안팎의 투자가 쇄도하여, 수많은 고용기회가 창출될 것입니다.
이 같은 조세개혁은 에너지 소비 자체에 대한 강력한 브레이크 작용을 할 것이기 때문에, 중대형으로만 치닫고 있는 자동차 와 주택의 과소비 현상은 저절로 치유될 것이고, 그에 따른 배출가스 감소는 대기오염완화로 이어질 것이며,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해 만들어진 교도의정서 의 내용을 실제로 이행하는 최초의 모범선진국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교육 개혁에 동참할 것을 호소합니다.
초 중 고 대학을 막론하고 한국의 학교교육은 한마디로 처참한 지경에 와 있습니다. 교육이 이지경이 된 것은 오랫동안의 군사정권, 권위주의적 정권 하에서, 소수관료에 의한 획일적인 통제위주의 교육행정을 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평등개념만 강조되었고, 창의력이나 다양성, 자율성은 수용되기 어려웠습니다. 구체적으로, 대학의 신입생 선발업무를 정부가 간여하는 일은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학생을 스스로 선발할 수 없는 대학은 대학이 아닙니다. 학생선발은 물론 대학의 모든 일은 대학 스스로의 책임 하에 자율적으로 수행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초중고 등 학교 또한 자유 경쟁 체제로 전환해야 합니다. 마치 암 제거 수술이 빠를수록 좋듯이, 이 같은 교육정책의 대전환은 빠를수록 좋습니다. 교육의 평준화 정책은 교육의 공산주의 같은 것입니다. 미국이 증명하듯이 자유로운 교육환경, 자유로운 기업환경은 국력의 원천입니다. 주는 사료만 받아먹고 있는 동물원보다도, 넓은 국립공원에서 뛰놀며 스스로 그 생을 책임지는 생태계가 더 건강한 것 과 같은 이치라 하겠습니다.

생활환경 개선에 동참할 것을 호소합니다.
공기와 물, 식품의 오염이 심각합니다. 엄격한 기준과 법률을 만들고 철저히 시행하여, 모든 오염의 원천을 봉쇄하도록 해야겠습니다. 국립공원의 범위를 넓혀서 숲과 강물을 지켜야겠습니다. 공기오염의 주범인 자동차의 배기가스 는 위의 조세개혁에 의해 크게 줄어들 것입니다. 특히 잘못된 세금특혜 때문에 범람하고 있는 디젤자동차의 매연은 크게 줄어들 것입니다. 세계 어디에도 세금특혜로 매연을 장려하고 있는 나라는 없을 것입니다. 담배와 마약에 대한 인식 또한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인체에 대한 유해성이 이미 검증된 담배의 판매에 지방정부 세수의 상당부분을 의존하고 있는 것은 웃기는 일입니다. 지방정부 세수입도 당연히 에너지 소비세 같은 새로운 세원으로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국민의 건강을 좀먹는 마약의 범람을 근절시켜야 합니다. 한국이 세계 마약 유통의 중간기지로 이용되는 것도 용납될 수 없습니다. 마약을 이 땅에서 영구히 추방하기 위해서, 싱가포르와 같이 극형으로 다스리는 법률의 제정이 필요합니다.

사법부의 개혁에 동참할 것을 호소합니다.
사법부 개혁의 출발점은, 3권 분립의 원칙에 따라, 입법부, 행정부와 동등한 수준의 독립성 과 권위를 회복하는 일에 있습니다. 이것을 가로막고 있는 가장 큰 장애는 대법원장과 대법관의 6년 임기제와 정년제입니다. 임기 만료된 대법관의 재임명 여부는 국회와 대통령의 결정에 달려있습니다. 이런 정부 구조로는 대통령과 국회의 사법부에 대한 영향력이 너무 크고 또한 일방적입니다. 이것을 시정하는 길은, 헌법을 고쳐서, 일부 선진국 과 같이, 대법관의 임기를 6년이 아니라 종신으로 하는 것입니다. 종신제 하에서는 대통령 제청과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서 한번 임명된 대법관은 어느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고 일생 동안 소신껏 오로지 사법부의 일, 법을 해석하는 일에 헌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의료보험의 개혁에 동참할 것을 호소합니다.
지금의 의료보험제도를 혹평한다면 전체주의적 발상의 소산입니다. 한국이 시장경제를 표방하는 자유선진국가라면 병원수가의 결정권은 마땅히 의료서비스의 주체인 각 병원에 돌려주고, 의료보험회사도 독점이 아닌 여러 보험회사의 자유경쟁체제로 바꾸어야 합니다. 시장원리에 입각한 의료서비스와 보험서비스를 유도해 국민의 다양한 의료수요를 충족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무료봉사에 가까운 수준의 초저가 병원의 박리다매 경영전략과 세계 최고의 의료시설 및 첨단의료기술 수준을 자랑하는 종합병원이 다같이 공존하며 발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의료제도와 보험제도에 대한 발상의 전환만이 의료대란 해결의 실마리가 되는 것입니다. 제도의 근본적 개혁 없이는 의료대란의 근원적 치유는 불가능합니다.






<60~80년대 SERI 연보>
◇66년 2월 舊 KIST출범
◇67년 6월 舊 KIST전산실 발족, 초대 실장에 성기수 박사
◇69년 9월 컴퓨터 1호기 CDC 3300 도입
◇70년 4월 국내 최초의 데이터통신 개통(KIST-경제기획원)
◇70년 11월 한글 라인프린터 개발
◇71년 10월 대입예비고사 채점 전산처리, 서울지역 전화요금업무 전산처리
◇73년 8월 전자계산부로 조직 확장
◇76년 6월 전산개발센터로 조직 확장
◇77월 2월 시분할교환기(EPBX) 개발
◇77년 9월 한글터미널 개발
◇79년 1월 IBM3032 도입
◇79년 12월 행정전산화 충북 시범사업 완료
◇80년 10월 의료보험 전산화 완료
◇82년 1월 KAIST 부설 전산개발센터로 개편, 초대 소장에 성기수 박사
취임
◇83년 10월 제64회 인천체전 전산화
◇84년 4월 제1회 전국퍼스널컴퓨터경진대회 개최
◇84년 11월 IBM과 소프트웨어공학센터(SEC)협력사업 개시, KAIST 부설 시스템공학센터(SERI)로 개편
◇85년 11월 동사무소 전산처리시스템 개발
◇86년 9월 아시안게임 전산화
◇88년 10월 88서울올림픽 전산화
◇88년 12월 슈퍼컴퓨터 1호기 크레이 2S 도입 가동
◇90년 5월 대덕단지로 이전
◇90년 12월 시스템공학연구소(SERI)로 개칭
◇91년 6월 과학기술정보유통시범서비스 개시
  93년 슈퍼컴퓨터 2호기 크레이 C90 도입 가동
  93년 과학기술정보유통 사업팀이 KIST 부설 연구개발정보센터(KORDIC)로 승격됨. 소장에 성기수 박사 취임
  96년 SERI 의 연구실들이 ETRI 로 통폐합되고, 슈퍼컴센터와 연구전산망 사업이 KORDIC으로 이전됨  
  99년 KORDIC과 KINITI(한국산업기술정보원) 가 통폐합되어 한국과학기술정보원(KISTI)가 탄생함. 초대 원장에 조영화 박사 취임
  2002년 KISTI에서 슈퍼컴퓨터 3호기(IBM) 도입 가동    
  


성기수 박사 약력
△1934 경북 성주 출생
  초전초등, 왜관초등, 대구 사대부중, 성주농고, 대입예비고사를 거쳐
△1958년 서울대 공대 졸업 (조선항공공학 학사)
△1963년 미 하버드대 졸업 (기계공학 박사)
△1958-68년 공군사간학교 항공역학 교관 (공군소위-대위)
△1965-67년 한국경제개발협회(KDA) 조사역
△1967년 과기연(KIST) 전자계산실장
△1969년 전문전산교육장 개설
△1973년 KIST 전자계산부장 겸 전자계산개발실장
△1977년 동 전산개발센터담당부장
△1981년 동 시스템공학센터소장
△1989-93년 동 시스템공학연구소 소장
△1993-95년 동 부설 연구개발정보센터 소장,
  1995-98년 동명정보대학교 초대 총장
△2000년 세계사이버기원 대표이사
  2000년 국가과학기술 자문위원회 위원
△2001년~현재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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