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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月 2日
김철수 교수와 plasma 원고 공동 집필. 학문보다도 학문의 보급과 돈을 몇 푼 얻는 것에 뜻이 있는 것. 저녁에 김철수 교수 댁에서 식사, wife와. 바둑 1국, 석패. 화제는 학생데모, 한일회담, 유기천 총장, 교수회의, 한국의 대학의 살풍경.
한국비료 취직은 추진하는 것이 좋겠다. 유체역학을 살리는 길이고, 한국 농업문제의 일환을 해결하는 것. 그리고 보다 안정된 한국의 시민이 될 수 있는 길. M.I.T. 1966. Sept. School of Industrial Management; Harvard Graduate School of Business Administration; Drexel Institute of Technology의 계획은, 한비 취직이 좌절되는 경우를 생각해서 일단 시작은 해놓는 것이 좋겠다. Letter for Application Material. 오늘 중 발송.
※ 서울大에서의 한 시간 강의는 50¢를 번다. 교통비와 점심이 된다. 다방을 들리면 赤字가 된다.
9月 4日
제일병원으로 낙착. A-OK. Service class : 7000원(=25$)
* 韓國비료에서는 아직 무소식.
* 곤봉 구입.
9月 5日
서대문과 회기동에 도둑경보장치를 달려고, 배가 부른 아내와 행차. micro switch가 品切. 고려당 목장우유. 서대문 충정로 점심. 수삼, 대용이와의 탁구 대전도 허사. 서울식품, 꿀. 합승. 이문동 행. 17번. 휘경동. 회기동.
9月 6日~9月 7日 月, 火
空士를 출근하는 날이다. 水木金土는 休日.
5日간의 시간을 전적으로 독서에 쓴다면, 큰 성과를 올릴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Henderson의 Microeconomics를 독파해야겠다.
9月 7日
덕수장에서 퇴근 즉시 박철 Jr., 주영일, 전역 도미 축하 겸 유봉환 전역, 장재명 대위 → 소령 진급 축하, 불고기, 진로 party. 나는 박철 Jr.와 함께 술을 전혀 입에 대지 않았다. 항공역학 group의 2次에 機械쟁이가 끼고, 조 소령 도망. 홍 소령 추격. 그 틈에 나도 도망 길에 장재명 소령을 만나 술집 안내를 하고, 다시 도망. → 집으로 9시에 도착.
9月 10日
추석. 수영이가 놀러나가서 내일 저녁에 온다. 따라서 아내와 단 둘이서 오늘과 내일을 집을 지킨다.
9月 11日
저녁. 승용이가 Canada 행 주소를 들고 왔다. 바둑 1局. 저녁.
Canada냐 이창업이냐 그것이 문제다. Henderson & Quandt 앞으로!
9月 12日
Canada 행 구직 편지를 11개 완성. 장인어른 오시다. 이창업 건 추진을 주장.
Henderson & Quandt 앞으로!
9月 14日
어머님 상경. 따라서 16日 星州행은 생략.
송인상 경제개발협회, via 이희국.
이번 학기 이희국의 박사과정 과목은 내 학위 논문의 계산 반복으로.
9月 29日
자유쎈타아 건물 안 3층.
V. 송인상. 한국경제개발협회에 취직 확정. 10월 1일부터 나가기로. 수리경제학으로 취직이 된 것이다. 할 일은 1976년의 한국경제의 Demand Vector 추정. 그밖에 I-O table(산업연관표) 解析.
V. Canada의 Laval University에서 회답. 희망적.
V. M.I.T. 경제학과의 Assistant 건과 계속 추진하여 결정. 선택은 그때 가서 할 일이다.
V. 소사의 기덕이가 생남. 女. 女. 男. 희소식. 엄승용(큰 처남)은 또 생남. 男, 男.
성기수+엄정림의 2세 산 일이 3주로 임박.
9月 30日
내일부터 자유 center 內의 한국경제개발협회에 출근한다.
下午에 한국은행조사부 도서실. 엄승용(GNP과), 구달회(산업연관 분석과), 정헌준(재정?) 과장. 책 “日本經濟の豫測と計劃” 빌려오다. 엄, 구, 성. 다방에서 10분. 귀로에 이창업씨에게 들려 한비 단념을 통고하려다 면회 사절(∵초만원).
서울부동산에서 장인어른과 중역들과 환담.→회기동
※ 정헌준씨의 color slide 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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