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3-13
제6장 - 대입예비고사 자동채점
성기수 님이 남겨주셨습니다.
 

지금이야 우리 정보산업이 틀을 잡았지만 70년 초반만 해도 걸음마 단계였다. 지금이라면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모했던 일도 많았다. 일부에서도 시간에 쫓기고 인기도 없으며 모험도 뒤따르는 데다 돈도 특별히 생기지 않는 일을 굳이 할 필요가 있느냐라는 의견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가끔 이순신 장군을 생각했다.
7년 전쟁을 마무리하는 최후의 결전에서 승리를 확인하면서 적탄을 맞이하는 심경을 떠올리곤 했다. 아울러 중앙정부로부터 변변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주위의 모함까지 받아가며 묵묵히 거북선을 마련, 전쟁에서 이긴 창제정신을 생각하기도 했다.
70년 전후에 실시되었던 대입예비고사 전산화 등 일련의 입시 관련 전산화 작업도 지금 생각하면 사명감 하나로 버틴 일이었다.
컴퓨터를 쓰지 못했던 당시만 해도 시험채점에 ‘주판부대’가 동원됐다. 채점결과를 일일이 주판으로 튀겨 합산하는 원시적인 방식의 집계가 이뤄진 것이다. 주판부대가 진을 친 학교는 해마다 애를 먹었다. 입학시험 채점과 집계는 겨울에 이뤄졌는데, 한겨울에 몇 백 명의 주판부대가 동원된 데다 수세식 화장실이 갖춰지지 않아 집행하는 학교가 화장실 처리 문제를 곤혹스럽게 생각했다. 할 수 있으면 자신들의 학교에서 집계를 하지 않았으면 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화장실문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주판을 사용해 집계를 하다보니 계산결과가 틀린 경우가 셀 수 없이 많았다.

이 같은 채점과정 상의 잘못은 물론 대학입학제도에도 변화가 있어 전산작업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68년부터는 예비고사를 치러 일부를 거른 뒤 대학에서 본고사를 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예비고사 실시로 인해 일시에 대량의 데이터가 발생했다. 69년 말에 실시한 예비고사는 사람이 채점하고 집계업무와 통계업무를 주판부대와 컴퓨터 팀이 병행하는 식이었는데, 주판부대의 착오가 많아서 컴퓨터 팀의 승리로 간단히 끝났다. 다음해인 70년도 말의 예비고사부터는 채점까지도 컴퓨터로 하기로 결정되어 소위 OCR(광학문자판독기) 답안지가 도입된 해이다. 그러나 이 일은 만만치 않았다. 컴퓨터 성능은 빈약하였고 자주 고장났으며, 막 도입된 OCR기계를 다루어본 경험자는 한 명도 없는 상태인데, 잘못 작성된 답안지가 기계의 거부 반응으로 튕겨져 나오면, 한 젊은이의 일생이 걸린 문제라 하여, 반드시 재작성해서 다시 읽혀야 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는 것이 전체 답안지의 10%가 넘었으므로 그 작업량은 엄청난 것이었다.  예비고사 처리에 매달린 KIST 연구원들은 대입채점이 마감되는 두 달 동안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밤샘작업을 해야 했다. 당연히 이 프로젝트는 KIST 안에서 기피대상 1호였다.  보안은 이보다 더했다. KIST 본관 앞과 내부 전산실 앞에는 소총을 맨 경관들이 24시간 내내 경비를 서고 있었으며, 문교부 사무관 한 사람이 연구원들의 작업하는 장소마다 일일이 따라다녔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작업이 끝나도 일이 완전히 끝나는 게 아니었다. 해마다 전산처리 과정에서 잘못이 있다는 학부형들의 항의가 연례행사처럼 한 번씩 있었다. 이럴 때마다 학부형 대표와 기자, 경찰관이 입회한 가운데, 답안지를 꺼내 일일이 대조를 했으나 결과는 완벽했다. 모두 수험생 잘못이었다. 현장검증과정은 무척 긴장되는 일이었다.
만약 문제가 생긴다면 사회적 파장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것이기 때문에, 장관 한두 명이 물러가거나 내가 직업을 바꾸는 정도로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이 같은 긴장감 때문에 대학입학 시슨이 마감할 때까지는 항상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이 일을 기꺼이 인수해 가는 기관이 없었고 또 문교부에서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 업무를 다른 기관에는 맡기지 못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대입예비고사 관련 전산업무는 그후 18년 간이나 KIST/SERI 에서 수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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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제6장 - 대입예비고사 자동채점 성기수 35025 2003-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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