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3-13
제6장 - 박지만을 K고로 배정하라
성기수 님이 남겨주셨습니다.
 

다음 해는 광화문에 있던 대한전자공업이란 영세한 민간 전자업체가 이 일을 맡아서 ‘IBM 1401’을 써서 제비뽑기를 했다. 업체가 영세한 탓에 장소도 비좁았고, 많은 학생들이 몰려 아수라장을 이뤘다. 그들이 고생하는 것을 보니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우리가 하면 주차장소도 넓고 컴퓨터성능이 상대적으로 좋아서 제비뽑기를 하는데 아우성을 치는 일이 없어지기 때문에 결국 3년차인 72년부터 KIST가 이 일을 떠맡기로 결정했다.
KIST가 입시추첨을 맡으면서 과거같이 외부와 차단된 상태에서 합숙하며 작업하던 번거로움이 사라지게 됐다. 행사 당일엔 서울시 교육감이 직접 버튼을 눌러 중학교 배정을 시작하고 즉각 인쇄되는 배정결과를 높이 들어 사진기자들이 촬영하는 등 훌륭한 홍보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당시 숨겨진 이야기하나를 소개하면 시험을 치지 않고 중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이 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 고등학교 입학시험도 학군제로 관리, 추첨을 하게 되었다. 모든 일이 마무리되어 내일이면 학교배정이 발표되는 날 밤12시, 프로젝트 책임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박대통령 아들인 박지만 군을 최대 명문으로 꼽히는 K고로 배정하라는 모처의 요청이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단호히 말했다.
“서울시 교육위원회와 우리가 맺은 계약서에 대통령 아들을 특정 고등학교에 배정한다라는 조문이 있다면 그렇게 해라 ” 고 나의 확실한 입장을 밝혔다. 결국 박지만 군은 K고가 아닌 J고로 배정됐다.

입시과정 전산업무용역을 여러 해 동안 수행한 기관의 책임자인 나로선,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처리돼 자부심을 느끼는 반면, 아쉬움도 많았다. 대학 입학자료를 전산화하다보니 대입관련 업무의 부정이나 부정확이 없어져서 편해졌지만 전산화가 선다형 객관식 시험을 정착시키는 한 계기가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고, 교육에 대한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강화되는 것을 평소부터 반대해온 나 자신의 교육관에 반대되는 결과가 정착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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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제6장 - 박지만을 K고로 배정하라 성기수 1689 2003-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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