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3-13
제6장 - 장관수명을 고려한 기한 제시
성기수 님이 남겨주셨습니다.
 

이 때 OSI의 예비조사 결과가 나왔고, 공교롭게도 체신부 의 실무담당자는 영어로 된 수백 장이나 되는 조사결과보고서를 나에게 보여주며 번역을 해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단 한 장으로 요약, 정리하여, 체신부에 넘겨주면서 결론 부분에 간단하게 나의 견해를 밝혔다.
“OSI는 작업기간 3년 6개월, 비용 5백만 달러를 제시했다. 그러나 KIST가 이 일을 한다면 작업기간은 1년, 용역비 는 미국의 20분의 1수준이면 된다” 라고 결론을 맺었다. 이것은 경험에서 나온 수치는 물론 아니고, 이 프로젝트를 외국용역회사에 뺏기지 않기 위한 비상수단이었다.
당시 체신부장관의 평균 수명은 2년 미만이었다. 이 사업이 시작된 70년대 직전인 19대 박경원 장관과 20 황종률 장관은 각각 8개월을 재임했고, 21대 김태동 장관이 1년5개월, 22대 김보현 장관은 1년 2개월로 대부분 단명에 그쳤다. 이 점에 착안해서 나는 1년 안에 끝낸다는 솔깃한 안을 제시한 것이다.  체신부는 결국 OSI가 아닌 KIST에 서울 지역 전화요금관리 전산화작업을 맡겼다.

오기로 사업을 따냈지만 막상 시작하려보니 준비된 게 거의 없었다. 1년 만에 일을 끝내겠다고 자신감을 보였지만 그때까지의 준비상황으로는 1년 안에 일을 마무리 하긴 어려울 듯 보였다. 경험 있는 소프트웨어 요원이 한 명도 없고, 개발 팀의 전원이 대졸 초년생으로 겨우 컴퓨터 언어교육을 받은 직후였다. 컴퓨터 회사들이 한글 프린터를 아직 공급하지 않던 시절이었기에, 이 문제를 직접 해결해서 한글 모아쓰기 방식으로 매월 고지서를 보내야 하는 점이 문제였고, 또 한 가지 큰 문제는 당시의 키펀치식 수작업 입력방식으로는 매일 쏟아지는 대량의 발신증을 처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대량 정보 처리가 가능한 OCR(광학문자판독기) 기계를 도입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어디서 어떤 기종을 도입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동안 OCR 기계를 책에서만 봤지 그 누구도 직접 기계를 본 일이 없을 정도로 OCR 기계에 대한 지식이 초보수준이었기 때문이다.
마침 이 때 연구 실무책임자인 유완영 연구원이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유 연구원에게 유학을 가는 길에 OCR 기계 제작사들을 둘러보고 기계성능, 가격 등을 조사해서 보내라고 지시했다. 용역기간이 1년밖에 안 돼 오래 끌 시간이 없었다. 때문에 유학을 예정보다 한 달 먼저 가게되면 당시 연구원 계약기간인 2년에서 한 달을 채우지 못하고 가는 셈이었다. 그러나 한 달 먼저 유학을 떠난 것이 문제가 되었다. 나는 이 사업이 KIST의 실력을 평가받는 중요한 일인 데다 시간상의 문제로 한 달 먼저 유학을 떠나는 것이 큰 문제가 될 것은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KIST의 당시 담당 부소장은 2년 계약을 채우지 않고 유학을 가는 것은 명백한 계약파기이고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며 유 연구원을 파면처리 하겠다는 입장이었다. 나는 이 같은 결정을 부당한 것이라고 맞섰지만 결국 유 연구원은 면직 처리되고 말아, 개인적으로 섭섭한 감정을 지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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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제6장 - 장관수명을 고려한 기한 제시 성기수 35006 2003-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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