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3-13
제6장 - 연구원 12명 모두 딸 낳은 불가사의
성기수 님이 남겨주셨습니다.
 

전화요금 관리업무 전산화와 입시관련업무 전산화로 밤낮 없이 일하던 당시 연구원들의 노고도 잊을 수 없는 일이다. 채규대, 유락균(작고), 김우영, 권순덕, 황대규, 이대식, 이춘희, 이무신……등. 이 일이 한창 진행되던 71년에 아이를 가졌던 연구원들은 다음해인 72년 2세를 얻었다. 그런데 72년 한 해 동안 태어난 연구원들의 2세들인 12명이 한 명도 빠짐없이 여자애가 태어나는 진 기록을 세웠다. 이 같은 기록은 나의 혹사정책(?) 때문이란 우스개 소리가 돌 정도로 연구원들의 열정은 밤낮이 없었다.
나는 동물원에서 사육되는 동물을 관리하기보다는 각종 동물이 활발히 서식하는 정글 속에서 삼라만상이 건강하게 커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게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왔다. 무질서해 보이지만 야만의 정글 속에도 섭리가 있는 것이다. 그 때만해도 가진 것 없는 마당에 우리가 성장하기 위해서 모두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전화요금 전산화처럼 곡절이 많았던 일을 무난하게 처리할 수 있었던 것도 연구원들이 어려운 가운데서 도전의식을 잃지 않고 자기 일처럼 성의를 다해 주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전화요금 관리업무 전산화는 당장 서울 체신청의 인력 4백 명을 절감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전산화의 타당성이 높다는 사실이 증명된 셈이다. 이후 정부 행정업무 전산화 작업이 명분과 동력을 얻게 된 것은 당연했다. 한편 개인적으로는 이때 작업에서 정부 행정업무의 효율화라는 본래 목적 외에도 또 하나 얻은 성과가 있었다. 즉 컴퓨터를 통해 부정부패를 봉쇄하고 행정업무를 투명 화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처음으로 발견한 것이다.
KIST는 시스템을 개통한 후에도 3년 동안이나 전화요금 처리업무를 직접 맡아 수행해야 했다. 당시 체신부가 시스템 운영기술이 전혀 없는 상태라 업무를 인수해 갈 수 없다고 버텼던 것이다. 별 수 없이 KIST 개발 팀에 50명의 체신부 인원을 추가로 파견 받아, 요금수납과 확인업무까지 직접 운영해야 했다. 문제는 그 후에 생겼다. 이른바 '유령 전화기'가 바로 그것이다. 컴퓨터가 당시 서울시내 전화번호와 그 번호의 통화를 모두 기록해 요금을 매기는데, 가입자 파일에 없는 전화번호로 시외국제전화를 쓴 기록이 계속 컴퓨터에 나타나는 것이었다. 주소는 없고 번호만 있는 전화기들이었다. 아무래도 체신부 내에 등록되지 않은 전화를 가진 사람이 있어 계속 공짜 통화를 해왔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그런 전화가 만만치 않은 숫자라는 점이었다.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심했으나, 그래도 우리 고객을 고발 할 수는 없었다. 별 수 없이 그 데이터를 뽑아 체신부에 넘기면서 "자체 감사에 쓰던지 해라. 별 문제가 없다면 결국 우리 시스템의 오류일 것이다" 라고 말해줬다. 그러나 체신부는 그 데이터를 받아가기만 하고, 그런 현상이 나타난 원인에 대해서는 반응이 없었다.
첫 달에 이어 다음 달에도, 그 다음달에도 그 현상은 계속 생겼다. 여전히 유령전화기가 통화를 해대는 것이다. 그러나 변화가 없지 않았다. 유령전화기가 없어지지는 않았지만 통화량이 차츰 줄어드는 현상을 보였던 것이다. 계속 데이터를 뽑아서 넘겨주니까 뭔가 켕긴 사람들이 자진해 유령전화기를 철거하는 현상이라고 해석했다. 나로서는 컴퓨터의 계산능력 뿐만 아니라 기억능력도 무서운 것이라는 사실, 투명하고 명랑하고 효율적인 미래 정보화 사회의 비전을 처음으로 실감할 수 있었던 사례였다.

또 하나의 파급효과는 컴퓨터의 범죄수사에의 이용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전화요금 전산처리를 시작한지 수개월 후 중앙정보부와 대검찰청에서 협조를 요청해온 일이 그것이다. 별안간 사람이 찾아와 전화번호를 하나 보여주면서 “이 전화가 지금까지 시외전화를 걸었던 상대방 전화번호를 모두 뽑아 달라.”는 것이었다. 일종의 수사협조 요청이었다. KIST가 그때 전화요금만 계산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사실 컴퓨터로만 가능한 작업이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러느냐?”고 물어봤더니 “간첩혐의자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여관에 묵다가 갑자기 사라졌다. 그래서 전화 접선자를 확인하려고 한다.”는 설명이었다. 결국 고객인 서울 체신청의 양해를 얻어 리스트를 뽑아주었는데, 앞으로 컴퓨터가 범죄수사에도 크게 이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관련글 목록
49 제6장 - 연구원 12명 모두 딸 낳은 불가사의 성기수 34919 2003-03-13

  

     

Copyright 2003. sung ki soo All right reserved. E-mail : kss13@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