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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月 1日
고상용 : 기수――.
K : 누구냐? 오- 상용이.
고 : 나, 간다. 아무래도 안되겠어.
K : 에 참. 돈이 어디서 낮잠을 자나. 집으로 가지?
고 : 그래, 아버지 병환만 아니면 또 모르겠는데, 잘 있어.
K : 오, 잘 가자. 언제 또 오냐?
고 : 다음 학기엔 어떡하든 꼭 나올 작정이다.
K : 잘 가자. 또 만나겠지머.
고 : 내 대신 공부 많이 해다우.
K : 음. 염려없어. 너 몸은 튼튼하지.
고 : 꺼떡없어.
K : 그럼 됐어.
1243호실
K : 난 그 동안 외로워 죽을 뻔했다.
형주 : 너 여기 있었다지. 어떻게 지냈노?
K : 난 뭐 늘 그대로지.
형주 : 공부 많이 했지.
K : 공부 못했으니까 탈이지, 독일어 좀 한 것 밖에 없어.
형주 : 그래 경과보골 해라, 보자.
K : 경과보고? 그저 기계처럼 밤낮 바쁘게 돌아가기만 해야 하는 내 八字에 무슨 변화가 있겠냐? 잠은 기숙사에서 자고, 밥은 지서 옆에서 사먹고, 일은 일호관에서 하고, 그러고보니 애― 또. 하루 평균 3km쯤은 걸어야 했고, 일은 12시간, 잠은 7시간, 공분 여가치기 그리고 ――.
형 : 이놈아. 누가 그걸 물었어?
K : 그럼?
ㅎ : 코바우 딸 말이다.
K : 이 새끼. 밤낮 그것만 생각하냐? 굶은 놈 하- 알 수 없다.
ㅎ : 몇 번 만났노?
K : 다섯 번.
ㅎ : 어디 입학했지?
K : 몰라.
ㅎ : 이런 바보새끼, 그래 다섯 번 만나고서도 그걸 몰라?
K : 안 물어봤으니까 그렇지. 사실은 이번에 졸업하는지 조차도 몰라.
ㅎ : 도대체 그건 말이 아닌 소리다. 이놈아 그런 법이 어딨어.
K : 사무적으로 대하니까 그렇지. 사무적인 말 이외에는 한 마디도 건네본 일이 없어.
ㅎ : 제-ㄴ장 그래 이놈아 말도 안하고 어떻게 알아.
K : 그건 얼굴 표정만 보면 직관적으로 명백하지. 특히 그 맑은 눈동자만 들여다보면 다 알 수 있어. 처음에는 대리석 같이 차가웠는데 요지음은 확실히 무엇이 좀 변한 것 같애. 스파아-크가 일어나기도 하고.
ㅎ : 코바우는 미국 언제 가지?
K : 이 달 보름쯤 떠난다나봐.
ㅎ : 야, 떠나기 전에 적당히 해봐라야.
K : 이 사람아 부모한테 무슨 권리가 있어? 본인하고 눈만 맞으면 그만이지.
ㅎ : 야아-야 기수가 언제부터 이렇게 진보적이지.
K : 자명의 리지머, 진보는 무슨 진보. 그런데 형주야, 난 경제문제만 해결되면 당장에 이방에서 결혼식을 거행하기로 작정했다.
ㅎ : 거 정말 굉장히 진보적인데.
K : 신부측에 몇 사람 하고 내 동무 한 세 놈만 있으면 주롈랑 주임교수나 코바우한테 부탁하기로 하고, 술 한 주전자, 과자 한 봉다리만 준비하면 충분하잖아. 한 20분이면 끝나겠지머.
ㅎ : 그렇지만 신부측에서 반대하기 쉽지.
K : 그럼 그만두라지머. 출발도 안해서 핀트가 안 맞으면 어떻게 100년을 같이 살아.
ㅎ : 안 될껄. 특히 고등교육을 받은 여자일테니까.
K : 그러니까 이해할 수 있을 것 아냐? 3千만 동포가 60년 동안엔 모두 한번씩은 결혼할 테니까. 매년 애-또 50만 명이 결혼하는 셈이고, 평균 10만환의 비용이 든다고 하면, 애-또 25억환. 그렇지. 우리 나라와 같은 비참한 현실에서, 매년 25억환이 결혼식에 허비되고 있으니, 이게 바로 자살행위 아냐? 이러한 암을 하나씩 둘씩 제거하지 않고서야, 부흥부흥 백날 떠들어본댔자 일이 될 게 뭐냐? 이러한 폐습을 ――.
ㅎ : 이놈아 집어치워라. 네게 돈이 없단 말이 하기 싫어서, 그렇게 거창한 구실을 끌어대는 거냐?
K : 허― 이 사람이 오핼해도 분수가 있지. 난 이러한 폐습을 타파하기 위해서 고의적인 반동을 놀아볼려는 건데머. 내게 돈이 있고 없곤 상관없어.
ㅎ : 그럼 신문기자도 초청할테냐?
K : 해서 안될 건 또 뭐냐? 선전이나 계몽을 위한 자료와 전례를 만들자는 것이 당초의 취진데머. 두 사람이 사랑하니깐 가정이 성립하고, 혼인신고를 내니깐 법적으로도 완전한 부부가 되는 거 아냐? 제언장, 피로연행에 민의동원 식으로 사람 하고 뻐쓰 하이야를 동원하는 것 하고, 이 근처 동산으로 단 둘이서 산보 가는 것 하고, 그래 우리 나라 형편에서 어느 쪽이 낫단 말야.
14호실
B : 카르만 박사가 결혼을 안 했다니, 거 참.
K : 카르만 박사가 누구더라?
B : 칼텍스의 항공연구소 소장으로 있지.
K : 아 바로 박사호 다섯 개 땄다는 그 사람 말이지. 아니 그 사람이 결혼을 안 했어? 지금 몇 살인데?
B : 70쯤 되었겠지. 그런데 알고보니 결혼 안한 사람이 상당히 많아. 칸트, 뉴톤.
K : 뉴톤? 뉴톤도 안 했어?
B : 기수. 나두 그만둬야겠다.
K : 바보 같은 소리. 카르만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놈인데?
B : 굉장한 사람이지.
K : 사람도 아닌 모양이지. 결혼을 안 하다니, 그런 병신이 어딨어.
B :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사람이 항가리 사람이거든. 데오도레 폰 카르만이 이 세상에 나올 때는 아직 비행가라는 건 없었어. 항가리의 어떤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별로 발전성도 없는 시시한 직공으로 취직이 되어, 평범한 생활을 보내고 있었어. 그 당시 미국에선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가 이미 성공하였고, 구라파에서도 독일, 불란서에서는 여러 사람이 연구하고 있었지. 라이트 형제가 몇 년 앞섰다는 것뿐이지, 실제 연구는 독일이나 불란서에서 더 진전되고 있었거든. 그런데, 카르만이 자기 공장 대표로 가서 그 최초의 시험비행을 구경하고 공간정복의 가능성에 크게 감동했지. 돌아가는 즉시로 사표를 내고 그 때부터 뿌란틀 교수 밑에서 10여 년간 공부했잖아. 고국에 돌아가자 곧 항가리 항공연구소를 설치하고 風洞도 만들었지. 그리곤 이태리에 가서 꼭 같은 일을 해주고, 일본에도 와서 풍동을 설치해줬지.
K : 정말 인터내쇼날 엔지니야구먼.
B : 그 다음엔 미국에서 초청이 왔는데 거절해버렸지. 미국에선 재차 조건부로 초청을 해서, 일년에 6개월간만 일해주기로 절충이 되어, 6개월마다 대서양을 날러 다니면서 결국 미국의 풍동을 완성시켰잖아.
K : 야아-아아, 어마어마한데.
B : 그 당시 미국에서 제일 가는 자본가로 “미국의 제국주의자”란 별명을 가진 지독한 구두쇠가 유언하기를 내 재산을랑 항공연구에 써 달라고 했기 때문에, 미국에선 카르만 박사를 초청해서 풍동을 만들고는, 결국 카르만 박사를 아주 모셔가서, 칼텍스의 항공연구소를 맡기게 된 거지.
K : 26년 전이구먼.
B : 독일에선 뿌란틀 교수가 각 공장주를 설복해서 젯트엔징에 착수한 것을 카르만 박사가 알고 있었지만, 미국에선 일이 그리 간단치 않았지. 미국에 있는 학자는 참 불쌍해.
K : 무엇이?
B : Contract research(계약 연구)라 해서 미국에선 회사나 군계통에서 연구할 게 있으면, 그것을 그 분야의 권위자에게 가져가서, 연구제목과 돈의 액수를 정해놓고 몇 달 동안만 일해달라고 흥정을 하잖아.
K : 황금만능이라더니, 미국에선 학자도 한 상품이구먼.
B : 학자나 교수들에겐 자본이 없으니까 별수없이 팔려다니는 거지. 어쨌든 미국에선 카르만 박사의 설교가 성공 못했지. 그래서 교수들이 월급을 조금씩 뜯어모아서 조그만 회사를 하나 세우고, 그것이 발전해서 로켓트를 쏘게 된 것이 독일보다 10년 뒤였지.
K : 그 사람 주로 무슨 공불했지?
B : 열역학 유체역학 까라 재료역학, 일반역학, 전자관 …… 안 탓취한 게 거의 없지.
K : 사람의 능력이란 참 신비한 거지. 아무라도 잘만 개발하면, 카르만 박사와 같은 두 뇌를 가질 수 있을 거 아냐?
B : 글쎄 카르만 박사 결혼을 안 했다니깐?
K : 결혼 안 했다는 것 하고, 향락 안 했다는 것 하고는 별문제 아냐? 연구에 지장이 있을 테니까. 가정은 안 가졌겠지만 애인이사 없었을라구.
B : 그야 알 수 없지. 여자와 접촉했었다면 제이센?
K : 산아 문젠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잖아? 여자 측에서 조금만 현명하면 기침 5분 전 체온 커어브 쯤은 간단히 만들텐데, 그 사람은 무슨 놈의 연굴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고 하는 모양이지? 사람이 기계가 아닌 바에야 무슨 변화가 있어야지. 하루 이틀도 아니고 단조해서 어떻게 살아. 가정을 갖고서 성생활을 적당히 콘토로오올 한다면, 연구에도 더 열이 날 것 아냐? 참, 내 좋은 비유가 하나 있어, 며칠 전에 법댄놈한테 들은 이야긴데. 호랑이한테 쫓겨서 지금 한 사람이 도망을 가거든. 낭떠러지에 이르러서 진퇴양난이거든. 그런데 마침 나무가 하나 아래쪽으로 드려져 있어서 그걸 붙들고 밑으로 내려갈려다가 보니, 그 밑에는 길이 10m나 되는 배암이 입을 벌리고 있잖아. 그래서 오도가도 못하고 나뭇가지에 지금 매달려 있지. 그런데 그 나무 밑둥치를 불개미떼가 벌써 절반이나 먹어들어 갔으니 이 사람의 운명은 이제 시간 문제 아냐? 그런데 이 사람이 매달려 있는 나뭇가지보다 약간 높은 곳으로 뻗은 가지에 꿀이 붙어 있었는데, 그걸 좀 핥아보려고 지금 무진 애를 쓰고 있거든. 이게 바로 톨스토이가 묘사한 인생이라나. 아무튼 우린 죽을 테니까. 거게 매달려 있는 작자가 바로 우리 자신이라고 볼 수 있잖아? 자기 운명을 잘 알고 있으니까. 그 꿀을 핥지 않겠다는 놈 하고, 본능이 명하는 대로 단순히 움직이는 놈 하고, 어느 쪽이 나을 것 같애? 또 당장에 포기하는 놈 하고.
B : 마찬가지지머. 낫고 못할 게 있을 게 있어야지.
K : 그러니까 결혼을 하고 안 하고 가지고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지. 이건 아무 표준도 못되잖아?
B : 그럼 아무것도 아니지.
K : 자살에 대해서도 꼭 같이 말할 수 있겠지? 그런데 철인 걱정이 안 되?
B : 무슨 걱정?
K : 죽을 일이.
B : 죽으면 그만 이지 머. 걱정은 무슨 걱정?
K : 아, 아니 그런 법이 어딨어? 철인 준비가 다 됐단 말이지?
B : 죽을 준비 벌써 해놨지.
K : 아무래도 모르겠는데, 난 준비가 안 됐어.
B : 죽는 것보다 쉬운 게 없을 텐데, 무슨 걱정을 한단 말야?
K : 박철이가 그 말을 할 때엔 그 “죽는다는 것”은 걱정하는 主體에게 일어나는 조그만 사건의 하나로 생각하고 있지만, 이 조그만 사건 때문에 그 主體라는 게 완전히 없어질 것 같으니까 걱정이지.
B : 그렇게 생각하면 할 수 없지. 우선 자기라는 것을 떠나야 해. 자기에 대한 애착을 그렇게 고집해서야 쓰나. 그럼 기순 살고 싶어? 언제까지나?
K : 그렇지도 않아. 하여튼 죽긴 싫어.
B : 죽기도 싫구, 살기도 싫구. 허참.
K : 육첸 물론 해산하겠지만 영적인 그 무엇 속에 “나”란 존재가 계속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이걸 안 밝히고는 죽어도 죽긴 싫어.
B : 자기를 떠나야 한다니깐, 자기란 건 아무것도 아냐. 자기를 초월할 수 없는 철학은 편견이야.
K : 자기 이외엔 자기란 게 없을 텐데 어떻게 자길 떠나? 모르겠다. 아, 아아이썅. “All this is what I think. But how do I know what I think is right?” 마지막으로 칸트가 이 말을 했거든, 말이사 바른 말이지머. 이걸 듣고 나니 철학인둥 논린둥 이성의 한계 안에 것도 따악 보기가 싫어졌어.
B : 그래서?
K : 그래서 꼬옥 죽을 뻔했지. 커다란 죽을 사짜가 허공에서 넘실거리고 죽음의 여신이 추팔 던지잖아. 내 보고 좀 함께 들어볼래? 아아이 그만두자. 하여튼 나 어떻게 슬프고 외로웠든지 이상한 쾌감을 느끼면서 자꾸만 창문으로 뛰어나가고 싶었잖아? 나 일하던 방이 이쪽으로 3층이고 그 밑엔 콩크리트거든. 특히 밤늦게까지 일할 때하고 저녁 해질 무렵에 유혹이 심하지. 3각산을 핏빛으로 물들이면서 서쪽 하늘을 장식하는 장엄한 낙조. 처음엔 아름다움을 찬미했지.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단조한 생활이 계속되고 이야기 할 사람은 없고, 그 큰 건물 안에서 밤낮 혼자 살려니, 나중엔 해지는 광경을 보면 무턱대고 슬퍼져서, 일도 공부도 집어치우고 목이 쉬도록 슬픈 노래를 부르고 다리가 굳어지도록 산보를 하였지. 하루는 시내엘 왔거든. 전차를 타고 서울 시내를 몇 바퀴 잡아돌면서 사람 구경을 실컷 했더니 마음이 좀 안정되었어. 모든 게 신기하고 아름다웠지, 천사가 어떻게나 많던지, 전차 차장만 봐도 얼떨떨하여 스파크가 일어나고 황홀 지경에서 그 조화롭고 아름다운 생의 약동을 찬미하는 판이지.
B : 그게 바로 정신이상의 전주곡이다.
K : 응. 그런 생활이 오래 가다간 정말 미칠 것 같애. 아무래도 여자 없인 살 수 없어.
B : 이번에 전주의 내 친구 한 놈이 “실락원”을 읽고 미쳐버렸어.
K : 밀톤이 지은 거지. 내용이 뭔대.
B : 아담과 이브가 에덴의 동산에서 추방되는 것을 묘사한 거지.
K : 아담이 뭐 하는 사람이더라?
B : 아 아니, 이런. 사람 영 돌았서. 아담을 모르다니 이젠 네 발 다 들었다아.
K : 그러니까 여자 없인 살 수 없어!
B : 어-어 이젠 다섯 발, 무슨 놈의 홍두깨 같은 논리야?
K : 물론 다섯 발을 동원해야지!
관모, 영희, B, K : 와하하… 어어.
4月 3日
B : 웃지 말고 한번 생각해봐.
K : 울면서 생각하면 머 뾰죽한 수가 나오나?
B : 기순 사는 목적이 뭐지?
K : 난 목적 없어.
B : 공과대학엔 뭐하러 왔지.
K : 그야 낙오자 되기 싫으니까 왔지. 무얼 만들고 싶기도 했고.
B : 사는 목적을랑 국민학교 선생한테 가서 다시 배워야겠군. 그런데 舍監이나 학생과장은 욕할 수 없어.
K : 舍則이나 學則을 적용할 줄만 알았지, 왜 그것이 만들어졌는지도 모르는 것 같으니까 욕하는 거지머. “정의가 자비심 앞에 머리숙일 때 지상천국이 이루어지나니.” 이것을 거부한 샤이록의 정의를 누가 욕 안 하겠어?
B : 그럼 국립대학에 들어온 게 잘못이지. 국립대학은 상부명령에 복종하는 한 관청이지 학생 위한 학교가 아니라니깐. 기수는 正義를 어떻게 정의하지?
K : 정의? 애또 정의란 인류공동의 복지와 평등을 위한 보편타당한 애애 또 그렇지 인류공동의 복지와 평등이 바루 정의라는 거겠지.
B : 틀렸어. 다수를 위해서 소수는 죽으란 말이지, 정의란 그런게 아냐? 그런 정의니깐 안토니오가 죽을 뻔했지.
K : 그러니까 평등이 붙었잖아?
B : 정의엔 그런 표준이 없어. 사람이란 것을 떠나서 더 근본적으로 생각해봐. 우리란 건 아무 것도 아냐.
K : 아아이 모르겠다. 박철인 어떻게 定義해.
B : “당연히 그렇게 되어 있어야만 하는 것” 그게 바로 정의지.
K : 그런게 정의라믄 사람이 간섭하든 말든 정의는 이루어져 있어야 할 것 아냐? 사람은 필요 없잖아?
B : 아 아니지. 現狀이나 歷史 그것이 정의는 아니지.
K : 그럼 당연히 그렇게 되어 있어야 하는 것인데, 그렇게 되어 있지 않고서도 시간이 흐를 수 있단 말이지. 이런 역설이 어딨어, 당연히 그렇게 되어 있어야만 하는 것이 그렇게 되어 있지 않아도 좋다니.
B : 그렇게 생각하면 쓰나. 역사나 사회란 그렇게 정력학적으로 움직이는 게 아냐. 일정한 목적을 갖고서, 인과와 관성의 법칙을 따라서 동력학적으로 움직여 개체 서로 사이의 유기적인 관련을 보지하면서 발전하는 거지.
관모 : 국어선생 말 안 들었나, 너, 보지라믄 안되. 지보라 캐야 되지.
K : 그렇다면 당연히 그렇게 되어 있어야 할 것을 그렇게 되도록 하기 위해서 일정한 수속이나 가속도를 제공하는 것이 우리 人間의 일이란 말이지?
B : 그렇다고 볼 수 있지만 人間의 專매 특헌 아니지.
K : 도대체 알다가도 모르겠다. 에에이 그만두자아. 백날 따져본댔자 뭐 뾰죽한 수가 있을 것도 같잖아. 정의를 정의했다 뿐이지, 왜 그런 정의가 존재하는지는 따져보지도 않고 떠들었으니, 내 생각엔 무엇이든 본질적인 궁극적인 것을 밝힌다는 것은 우리 인간에겐 부적당한 일인 것 같애. 사람의 理性엔 형이상의 문제를 다룰 능력이 없다는 것이 우리 人間의 본질적인 속성의 하나인 것 같기두 하고, 죽을 일을 생각하니 그런 문젤 생각 안 할 수도 없고, 에에 이썅 어떡하나 아.
B : 죽기가 그렇게 싫어? 살기도 싫다면서 무슨 미련이 그렇게 많아? 기순 누굴 제일 많이 사랑하지?
K : 난 기수란 사람을 제일 많이 사랑하고 그 다음엔 박철이 그 다음엔 아 아니, 장차는 내 애인을 제일 많이 사랑하겠지.
B : 결혼은 하겠단 말이지?
K : 안 하면 죄악이라니까아. 생각을 좀 해봐. 박철이 자신도 성행위에 크라이막스에서 출발했잖아. 성이나 생의 원리는 신의 의사일지도 모를텐데, 그것을 전제했기 때문에 존재하고 있는 박철이가 그것을 거부하다니, 그런 무모한 짓이 어딨어. 월권행위 아냐?
B : 그래서?
K : 20 전후까지는 대개 성숙할 테니까. 그때부터 이 신성한 내적 요구가 도덕, 관습, 법률, 신앙 등 인위적인 타성이나 구속 때문에 억제되어 신체 각 부에 여러 가지 부자연한 Stress를 일으키거든.
관 : 기수 자알한다.
B : 그래서?
K : 이 Stress는 당연히 제거되어야만 하도록 신이 인간을 만들었을 테니까. 이것을 제거하는 것은 바로 박철이가 정의한 정의이기도 하지.
관 : 됐어, 됐어.
B : 그래서?
K : 그래서 애 또 본론이 무어더라?
관 : 야아. 기수 밑천 떨어졌다.
B : 마땅히 결혼을 해야 한단 말이지?
K : 그러엏치 그게 바로 결론이지.
관모, B, 형주 : 됐어, 됐어.
B : 좋도룩 해봐. 내사 모르겠다.
관 : 그래 언제? 누구하고?
K : 미정이지.
형 : 코바우 딸 안 있나.
K : 아 알게 뭐냐? 코바우 딸이 될지, 경님이가 될지, 섬유과 강이 될지.
형 : 일마, 너 같이 돈 없고 못 생긴 놈 한테 뭣이 오겠노? 지금 세상은 황금 만능이라.
K : 설마 지구상에 하나 없을라구? 둘은 필요없어.
형 : 넌 일마 공기 먹고 살래? 너 그 와이쁘하고.
K : 둘이 밥통만 해결하믄 됐지머. 집을랑 내가 설계해서 이 근처에 이상적으로 하나 짓구, 지붕을랑 Solar Battery로 덮어서 자가 발전을 하지. 1평방미터에 50\이니까. 냉장고, 취사기, 보온, 하여튼 가정용으로 충분한 모양이더라.
관 : 참, 그 태양발전기가 우리 나라에는 굉장히 유망할 것 같더라. 미국하고 쏘련에서는 상당히 진전되었다지.
K : 미국, 쏘련뿐인가 뭐. 우리 나라보다 미개한 나라에서도 다아 하고 있는데, 우리 나라엔 공업정책이 틀려먹었어.
형 : 정책은 무슨 정책. 일정한 정책이 있으면 다행이게?
관 : 자아식들 밤낮 감투싸움도 바쁜데, 태양열이사 아알게 뭐어꼬, 연구열은 더욱 없지.
형 : 이번 선거에 실패하면 정말 큰일이지.
K : 아아이 그만두자. 정치 이야긴 듣기두 싫어. 여기서 떠들면 무슨 수가 나나머, 우리 목통만 아프지.
관 : 민의동원에다 생일잔치도 겸하느라고, 천환에 차 한 대씩 고용했다니. 그것만 해도 천대면 백만환 아냐? 세금 받아 이런 거 하라 그랬나. 글쎄 제엔장, 덴쬬-세쓰(天長節)에도 이런 꼴은 못 봤다. 그저 농민이 죽어나지.
ㅎ : 절량 농가가 20만이라니, 말이 됐어? 지금 중류 이하의 농민생활이 얼마나 비참한지 말도 못해, 우리 집두 그렇지만.
K : 이대로 가다간 나중엔 진짜 민의가 폭발 안 하겠나?
ㅎ : 선거운동비 백만환은 벌써 다 썼구먼 그래.
과, K, B : 와하하… 산뽀 나가자아.
ㅎ : 탁구 칠 용산 없어?
K : 산보 가자아.
4月 6日
투서――.
교무과장님 전
교무과 직원 김×씨의 즉시 파면을 요구합니다. 김×씨의 비인간적인 비행은 비단 이뿐이 아니겠습니다만, 이것만으로써도 파면의 구실로는 충분합니다. 교재 준비에 비인도적인 직권남용으로써 고학생의 고혈을 빨아먹고 그 죄상이 이미 폭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갖은 수단으로써 이를 엄폐하며, 아직도 그 버릇을 고치지 못하는 김×씨의 죄상을 밝혀보시고, 파면해 주시옵기 바라는 바입니다. 조항과 성재경이가 가장 유력한 증인입니다.
의분생 일동.
4月 6日 밤 10시. 기숙사 22호실.
B : 오오, 이제 들어와?
K : 아 아니, 오늘은 여기서 일했어. 에에- 무시라. 이제 다 끝났어.
B : 그렇게 입고 안 추워?
K : 안 추워. 그런데 철이, 난 또 걱정거리가 하나 있어.
B : ―
K :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이제부터 2년이면 졸업이니까, 일을 안 하고도 어떻게 계속할 수 있을 것 같애. 교과서 일은 거의 끝났지만, 朴교수는 무슨 일이든 귀찮은 건 나한데 다 떠맡길 모양이니, 이대로 가다간 아무래도 공부는 안될거 거든. 그렇다고 지금 그만두게 되면 朴교수도 큰일이지만 여태까지 일해온 보람이 없잖아?
B : 거참. 빼도 박도 못하겠는데.
K : 그러니 말야.
B : 이대로 계속해애봐아.
K : 그럴까? 그런데 이 방은 왜 이래 살풍경해, 저기 서 있는 침대가 꼭 송장뼉따구 같구먼, 혼자 있지? 쾌준이랑 정만이는 언제 들어오나?
B : 금속과 4학년도 한 사람 들어오지.
K : 과 중심을 폐지한단 말이지. 그런데 도대체 어느 놈이 누굴 위해서 주장한 거야? 교수회에서 가결했다지?
B : 사감 수작이지머.
K : 빌어먹을 놈의 舍監새끼 당장에 고만.
B : 그런데 이렇게 안할 수도 없어. 과 중심으로 하게 되믄 차가 심하거든. 조항과도 이젠 문호를 개방해야지. 동섭이는 24호실에 들어갔잖아.
K : 그래애? 보충대대 말이지? 거긴 참 큰일났어.
B : 이젠 좀 나아지겠지.
K : 기분이 나빠 정말 죽을 뻔했어.
B : 기분?
K : 기분이 이상하잖아? 갑자기 이렇게 바뀌고 나니께. 관모는 지금도 무얼 읽고 있다가 “어이, 박철이, 박철이” 하잖아?
B, K : 하, 하, 하…
K : 박철이가 지금도 자꾸 그쪽 구석에 남아 있는 것만 같잖아?
B : 14호실 분위긴 여전하지?
K : 노장파가 네 구석을 차지했거든. 석희, 관모, 기영이, 나.
B : 영산이 자리는?
K : 기영이가 차지했지. 기영이도 지독하거든. 보기는 공부할 것 같이는 안 생겨먹었는데, 꼭 무슨 테로 단장 같잖아? 형편없는 친구지. 관모는 이불홑청으로 카아텐을 쳐놓고 그 속에서 디리 파고 있는 판이지. 그 뚱뚱한 몸집에 의지력이 뚝뚝 흐르는 것 같잖아. 차암 믿음직하지. 석희는 공부하기 싫다고 말로만 노라리 타령이지, 책이나 노오트를 드려다보믄 기가 맥히게 해놨어. 석희 호령 소리가 벌써 두 번이나 쏟아졌지. 탁구대 뿌셔버리라는 것 하고 방안에선 떠들지 말자는 것 하고.
S 자리가 제일 나쁘지. 그런데 S는 내 도대체 이핼 못하겠어. 응원하러 가서 응원하지 않을 때부터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그 후론 S의 일거일동이 모조리 눈에 거슬리잖아.
B : 공부 안 하지?
K : 공부 무슨 공부, 하여튼 될 대로 다 됐어. 더 발전할 여지가 하나도 없지. 제따아는 가장 원만하고 사교적이지. 날씬하게 뽑아 입고, 담배 물고선 그 심각한 표정으로 먼산만 바라보는 그 으젓한 꼴이란 정말 두 눈으로 못 보지.
B : S 운동 안 하지.
K : 하면 뭐해. 절제도 없이 하다가 말다가 하는 거. 오히려 마이나쓰지머. 젊은 놈이 그렇게 진실성이 없고 무기력해서야 어디 젊은 보람이 있어야지.
B : 당신은 그래도 남을 험 볼 여유가 있으니, 나보다는 났구먼.
K : ―
B : 그게 바로 뿌르죠아 근성이라는 거지.
K : 제-엔장, 나 같이 돈 없는 놈을 보고 뿌르죠아라니, 말도 아닌 소리다.
B : 뿌르죠아가 뭐지?
K : 돈 많은 사람이겠지머.
B : 노-. 그게 아니지. 여유 있는 생활을 하는 사람이지. 정신면에든 물질면에든 여유가 있는 사람을 뿌르죠아라 하는 거야. 순수한 푸로레타리야 근성이라는 것은 자기의 삶에 급급하여 남을 생각할 여유가 조금도 없고, 경쟁이나 질투, 동정 등은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항상 불안과 공포에 싸여서 사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거지. 사람이란 모름지기 불안과 공포 속에서 살아야 해.
K : 그게 더 자연스럽구 정상적이란 말이지. 그렇지만 인간의 자유나 존엄성도 좀 생각해야지.
B : 존엄성? 그래, 불안과 공포 속에서 자기를 유지하려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투쟁하는 처참한 그 모습에는 인간의 존엄성이 없고, 저마다 잘났노라고 뻐기고 다니면서, 뚝하면 생의 지상명령까지도 거역하고서 자기의 독특한 존재와 정신적 여유 있음을 뽐내려고 드는 거만 무도한 인간들에겐 존엄성이 있단 말이지. 참 좋은 예가 하나 있다. 스무살된 처녀가 부역 혐의로 5년 징역을 치루었거든.
K : 지금 스물다섯이란 말이지.
B : 그렇지 어째서 그렇게 되었느냐고 했더니, 법정에서 변명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법관에게 욕만 실컷 했다고 그러잖아. 이게 바로 뿌르죠아 근성이거든. 이런 거만한 사람은 옆구리에 칼이 들어와도 제 고집만 피울 거거든.
K : 그렇지만, 불안이나 공포라는 건,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라도 가질 수 있는 거 아냐? 그렇다고 자기가 전 우주와도 바꾸지 않을 자기의 귀중한 존재가 없어져도 좋다는 것을 밤낮 걱정하다간, 그 사람의 생리에 도리어 부자연한 현상이 일어날 것 아냐? 일의 능률도 문제지만 유우모아나 오락이 없다면 생활이 무미건조하잖아?
B : 그건 알 수 없지, 어쨌든 본능은 양보하지 않을 테니까. 치열한 삶의 투쟁 속에선 사소한 위안이나 유우모아가 어떤 효과를 가져올런지.
4月 15日~4月 23日 오늘 도착(성주행).
경부선 위에서. 통일호. Miss. 化工, 부흥계획, 취직 문제, 학생의 사기, 태양에나지. 해양대학, 운크라, 서구 여행, 일본, 자기 발전과 교편생활, 선거, 정부.
자형과의 합의. 식량문제, 비행기 생산, 젯트기, 유도탄, 자동계기, 3차전 불가능, 대학원, 인공미. 지금 너는 무슨 공부하느냐?
노윤래(電氣科)와 뒷산에 산보:
인택이는 고시 준비. 항공과의 형편. 대학원. 독일어. 대학원에서 연구제목의 자유. 태양에네지. 가정용, 동력용, 모범주택, 연료문제. 유능한 정책 하에서 5년 내지 10년이면 되지 않을까? 정부의 연료 5개년 계획의 盲點. 무연탄 매장량의 한정성. 태양에나지의 이점. 원자력의 곤란.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을 바라보며 끝없는 이상을 주고 받다.
저녁 후 ―인택― 기술고시 준비에 합의. 기계과로. 이제부터 4개월 진격!!!
行政法 강의(韓泰淵 교수) 개시. 超 speed!!-------->
4月 29日
“行政法”
閉講!! 시간이 없다.
4月 30日
Y교수와 충돌. 항공유체역학 시간이었다. 순간적인 분노를 억제치 못하여 즉석에서 퇴장하고 수강신청을 취소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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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04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