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8년 8월, 한국 최초의 슈퍼컴퓨터인 ‘크레이-2S’가 가동될 때, 1초당 20억 번이라는 놀라운 계산능력의 대부분이 상당기간 놀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슈퍼컴퓨터 수요에 대한 이러한 과소평가는 3개월만에 가동률이 90% 이상에 이름으로써 기우에 그치고 말았다. 5년이 지난 93년 퇴역하는 ‘크레이-2S’ 자리에 들어온 ‘크레이-C90’의 경우에도 8배로 성능이 향상되었는 데도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즉 슈퍼컴퓨터 수요는 공급능력 때문에 항상 억제된 상태이고, 공급능력이 늘어나면 그 즉시 그만큼 늘어나는 것이다.
학술연구와 기술개발에서 늦게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여건이 불리한 한국의 경우, 1인당 슈퍼컴퓨터 용량에서 일본을 능가하도록 집중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우리나라는 유일한 오픈시스템인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시스템공학연구소의 슈퍼컴퓨터를 2백 여 개의 대학과 연구소들이 함께 쓰고 있는 형편이다.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라도 세계 최고성능의 슈퍼컴퓨터센터를 민간 주도형이든, 정부 주도형이든 조속히 출범시키고 국산 슈퍼컴퓨터 개발도 서둘러야 한다.
국가의 안보와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해서는 지역별, 권역별로 슈퍼컴퓨터센터를 분산시킬 필요가 있다. 각 센트를 상호 연계해 고속 학술연구 망의 기반구조를 완성할 때에만 학술연구와 기술개발의 선진화는 가능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미국의 실리콘밸리처럼 대학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신기술 기업 군이 탄생하는 선진국형 산․학․연 협동의 모델을 기대할 수 있다.(한겨레신문 96. 5. 19)